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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nta Fe [거룩한 믿음] 협약.

sofía36 2025. 10. 27. 16:41

그라나다에서 약 11km 떨어진 평원이 Snta Fe라는 곳으로,

우리나라 현대 자동차가 이곳의 뜨거운 기후와

네바다 설산의 차가운 온도로 신차 실험을 하여

<산타페>라는 브랜드를 성공시킨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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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말고, 역사적으로 다음 두 가지 협약이 있었던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 첫 번째 산타페 협약.

: 1491년 알함브라 함락 1년 전 알함브라와 대치할 때,
아래 도면 같은 성을 짓고, 4개 문을 냈다.
그러나 빈약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이사벨 여왕의 책략으로,
벽 외곽 4개 문과 이어서 가짜  울타리를 만들고,

흙이 풀어진 물에 담궈 흙물을 들인 천으로 감았다.
그리고 천 외면에 벽돌 크기로 줄을 그어 멀리 알함브라에서 보면,

마치 엄청 큰 성곽을 올린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를 본 알함브라의 군사들은
'알라신 보다 카톨릭 신이 더 세어서
저런 기적 같은 성을 만드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사기가 저하되었다.

이 틈을 타 여왕은 집시 밀정을 보내 알함브라의 동태를 살피고, 카톨릭 군사의 강성함을 퍼뜨리게 하였다.

이와함께 알함브라를 포위하여 식량 등 물자 공급을 막아 그라나다 시민들이 굶주리게 하는 데까지 몰아 넣었다.

이에 보압딜은 1491년 11월 29일 산타페로 찾아와 협약하길,
72 가지 조건과 함께 2달 내로 남부 지역에서 원조가 안오면 항복하겠다 하였다.
이에 그 협약의 조건으로, 보압딜의 어린 왕자 두 명을 볼모로 잡고 보호했다.

그러다 1492년 1월 6일 예수축일에 맞추어 항복을 받으려 했으나, 그라나다 이슬람 시민들의 분노가 거세진다는 우려로, 4일 압당겨 1월 2일에 항복을 받아내게 되었다.

보압딜은 성내 2천 여명을 거느리고 칠층탑 문을 통해 유배지 Laujar de Andarax로 떠났고,
이사벨과 페르난도 2세는 1월 6일 예수축일에 맞추어 남문인 7층탑 문으로 입성하게 된다.

 

이렇게 어언 781년간의 이슬람 지배를 물리치고 카톨릭 국가로 회복하는 레콩키스타가 완료되었던 것이다.

 

 

🍀 두 번째 산타페 협약.

: 한편, 1485년 이후 7년이나 기다리며 애태우던 콜럼버스는 드디어 알함브라에서 여왕을 알현 후, 산타페에서 대항해에 대한 협약을 체결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산타페 협약>인 것이다.

협약 내용은 대충,
1. 인도를 발견하면, 그곳을 다스리는 황제로 여왕이 되시고 자신은 부황제로 인정하며, 자신의 후손으로 부황제 위가 계승함을 인정할 것.
2. 자신을 해군 제독으로 정식 임명할 것.
3. 인도 발견지에서 얻은 수익의 10%는 자신의 몫으로 한다.
4. 자신을 귀족으로 승급할 것.
등등을 내세움.

이사벨 여왕은 800년 만에 이슬람을 몰아내고 카톨릭으로 국토를 회복한 기념으로, 로마 교황으로부터
<Isabella Catolica>를,
남편 페르난도는 <Fernando Catolico>를 이름으로 하사 받는다.

때는 오스만 투르크가 동로마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발칸반도 및 비엔나와 헝가리까지 차지하여, 인도에서 유입되던 후추 등등의 물자가 끊어진 때였다.

이 때 여왕 부부가 이슬람을 물리친 것에 로마 교황청에서 크게 기뻐했고,
여왕 자신도 인도로부터 공급받던 물자들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여기에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연안을 정복하여 얻는 이익에 귀 기우리며 배아파 하던 때였다.
이에 주위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보석을 내어주며 콜럼버스의 제안을 승인하게 된 것이었다.
이 때 페르난도 2세 아라곤 국왕의 사인도 받게 된다.

이윽고 1492년 4월 6일 Palos de la Frontera 항구에서 대항해 출항을 하고, 1492년 10월 12일 바하마제도 발견으로 인도라고 착각했고, 1493년 8월 6일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부부 임금을 알현함으로써 대항해를 입증하였다.

이로써 스페인의 대륙을 아우르는 대 제국의 전성기가 문을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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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회와 시청사이의 광장이

옛 도성내부 그림의 Armas광장임.

페르난도 2세 아라곤 왕국의 영토

그라나다의 항복

원본은 그라나다 대성당의 왕실 예배당에 있다.

1898년 스페인이 어렵던 시절 특별 주문으로 그려졌고,

이 그림을 계기로 스페인의 영광을 되살리자는 국민의 바램에 부채질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산다페 협약 체결 기념관

이사벨 까스띠야•레온 왕국 여왕

페르난도 2세 아라곤 국왕

Parroquia de La Encarnación de Santa Fe

산타페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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