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론다는 사진으로 보이는 지역만이 유일하게 평지로 이어진다.
나머지 방향은 200m이상의 절벽이 둘러 싸여,
'rodear 둘러싸다, 포위하다'라는 의미에서
'Ronda'라는 이름이 되었다.
따라서 이 쪽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3중 벽으로 성곽을 두른 것이다.
앞으로 보이는 약 1900m의 산지를 넘으면 지중해로 이어진다.

스페인 왕실 기마병 학교 및 훈련소.
넓은 초지는 말 목장이고, 숲쪽은 말이 잠자고 쉬는 곳이며,
숲 내부에 광장이 있는데, 여기서 기마훈련을 한다 함.
이슬람 시대부터 이곳은 기마병을 훈련시키던 곳이였다.
이슬람 기병들은 말에 올랐을 때,
발고리가 짧고 창도 짧으며, 복장도 가벼웠다.
따라서 기동력이 우수했다.
이에 반해 카톨릭 기병은 발고리가 길고 창도 길며,
복장도 철갑으로 온 몸을 싸아 둔하고 느렸다.
이러한 장단점을 개편하여 후대엔 중간 길이에
짧아진 창과 덜 무거운 복장으로 바뀌게 된다.
기마병의 중요한 쓰임 때문에,
현대의 스페인 왕실에서도 이곳에 기마병 훈련소를 양성하고 있다.









목장 뒤로 보이는 산지를 넘으면 그라나다로 가게 된다.


이슬람은 항상 3중 4중 5중 성벽을 쌓아 외적에 대비하였다.
사진은 3중 벽 형태를 보이는 사례임.
저 뒤의 내벽을 올라야 드디어 론다 구 시가로 들어선다.









무화과 나무.






세계 유일의 山賊 박물관.


이슬람 발코니가 있는 유일한 교회.
벽돌벽체와 열쇠형 아치 문 등 이슬람 양식이 남아있다.
원래 이슬람 교당이었으나 카톨릭 교당으로 변함.



시청 건물.






앞면의 이슬람 양식과 달리,
뒤로는 후대에 증축하면서 대리석 벽체로 바뀌었다.







론다는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지브롤터를 거쳐 사아라를 통과 후,
이 론다를 지나야만 그라나다로 들어가게 된다.
다른 방향은 마르베야 항구에서 산맥을 올라 론다를 거친 후, 그라나다로 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길은 험하고 대량 물자나 군대가 이동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론다는 너무나 중요한 요충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1481년 사아라가 무너지고,
1485년 론다가 함락되면서 그라나다는 힘을 잃게 되었다.
여기에다 그라나다 뒤쪽의 Baza 등 지역이 함락 되는 등, 앞 뒤로 조여왔다.
물자를 공급하던 말라가 마저 6개월 공성전 끝에 함락 되자, 그라나다는 사면초가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큰 단초가 바로 이 요충지 론다가 함락된 것에 있었던 것이다.
론다 사람을 'rondeño 론데뇨' 라고 할 만큼,
강인하고 빠르며 똑똑한 사람들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역사 이래로 이 곳이 지정학적으로 겪었던 중요 지역이었음을 말한다.
이슬람 이전엔 지브롤터를 타고 올라온 해적 및 산적들의 중요 활동 무대이자 거주지였다고 한다.






가게 옆 좁은 마을 길.
이 길을 따라 죽 가면 누에보 다리 남쪽 전망대로 내려가는 곳이 된다.



론다 구 시가를 도는 마차. 약 30€.















이슬람 시대의 유일한 다리.
옆으로 지금까지 가장 온전하게 남은 아랍 Baño가 있다.


Viejo 다리 [옛 다리]
: 누에보 다리가 투우장 건설 목적으로 건설되기 전,
주로 이용하던 카톨릭 시대의 다리.















론다에도 로마 수로가 있었다.
그러한 수로를 타고 각 요점 마다
이같은 수도시설이 설치되었다.
말이 먹던 물은 평평한 수조에 물구멍이 하나이고,
뒤로 사람이 먹는 물은 수도꼭지를 설치한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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