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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광장 2.

sofía36 2025. 10. 19. 17:15

✿ 스페인 광장 새소리.mp3
0.22MB

✿ 스페인 광장 분수물 & 새소리 종합

민속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 세비야 인근의 로마유물들 총 집합.

Pbellón Real
: 1929년 엑스포 당시, 스페인 왕실館

아메리카 광장

Huelva 州 Palos de la Frontera 항구.
: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을 힘들게 설득하고, 겨우 소액의 후원을 받고 처음 출항했던 초라한 출항 모습.
: 손을 들고 있는 이가 콜럼부스고, 그옆에 배웅하던 딸라베라 신부 및 사제들, 출항을 하던 선원과 그 가족들의 우는 모습 등이 묘사됨.

이사벨 여왕은 1482~1492까지 국토회복 전쟁에만 전념함.
그 때문에 콜럼버스의 요구를 지나치는 사례가 많았다.
콜럼부스는 여왕을 알현할 신분도 안되었던 즈음, 팔로스 교회에 주석하며 여왕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던 역할을 하던
딸라베라 신부의 추천을 받고 만나게 됨.


그림에 보이는 맨 오른쪽 남자는 팔로스 항구의 덕망 있던 집안의 삔손 형제 중 맞이임. 삔손 형제의 도움과 후원도 큰 힘이 되었다.

스페인에서 대항해 프로젝트를 제시하기 전, 포르투갈 주앙 2세에게 제의를 했으나,
주앙 2세는 이미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을 식민지화 하며 재미보고 있었기에, 콜럼버스의 제안이 무시 되었다.

그는 포르투갈 귀족 여인과 첫번째 결혼을 하여 아들을 두었으나, 부인이 일찍 사망하여 아들을 저 신부에게 맡기고 빌린 1척과 삔손이 후원 해 준 2척인 총 3척의 작은 배로 출항함.


이사벨 여왕은 자신의 보석 등을 팔은 소규모 자금으로 후원함과 함께, 그림 속에 배에 앉은 죄수였던 선원 4명만 후원해 줌.
이같이 허술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왕의 후원이 있는 것이란 명목이 필요했기에 여왕의 재가를 받으려 했던 것이였다.

이 모든 것은 삔손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다른 선원들이 따르게 되었다.

콜럼버스 부조물

첫 출항후, 까나리아 섬에 도착해 물과 식량을 보충했던 것을 묘사.

바르셀로나
: 콜럼부스가 대 항해에서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여왕부부에게 첫 하례인사를 올리는 장면.
옆에 대륙 발견의 증거로 데려온 인디언들이 묘사됨.


콜럼버스는 자신이 인도를 발견한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거기서 데려온 사람들이 '인도사람'이란 의미로 '인디언'이라 부름.
이로써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을 '서인도 제도'라고 명칭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

이후 아메리고 베스푸초가 다시 대 항해 후, 인도가 아닌 새로운 대륙임을 밝히게 되었고, 이어 '아메리카'라는 명칭이 굳어졌다.
만일 콜럼버스가 인도라는 착각에 빠져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아메리카는 '콜럼비아 대륙'으로 명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혹자의 평가처럼,
"콜럼버스가 신 대륙을 발견해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대 항해에 나선 것이 위대한 것이다"라고 하였듯,
콜럼버스에 대한 평가는 시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삔손 형제들 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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